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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종 유년기

1544년(중종 39년) 음력 11월 15일 아버지 중종이 승하하고 관례대로 5일 후인 음력 11월 20일, 창경궁 명정전에서 다음 왕위에 올랐다. 인자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답게 유학에 바탕을 둔 선한 정치를 펼치려 노력했다. 기묘사화 때 죽은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부활시키는 등 중종 때 좌절된 성리학에 입각한 도학(왕도) 정치를 재현하려 노력했는데 실제로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동안 압박받던 사림들이 환호했다. 사간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관이 자신을 기록하는 사초(실록의 원본)에 이름을 써넣지 않아도 된다는 옛 규정을 부활시켰다. 다만, 몸이 약했고 계모였던 문정왕후의 도를 넘은 압박 때문에 고생해야 했다. 야사 등에서는 문정왕후가 인종을 늘 괴롭혔다고 하는데 경원대군과 함께 편전[26]에 들어서 "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 거냐. 죽이려거든 지금 죽여라."라고 포악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. 정작 그는 문정왕후를 어머니로 극진히 우대했고 나이 차이가 거의 아들뻘(19살 차이)인 이복동생 경원대군과도 친밀하게 지냈다고 한다.